겨울은 언제 올까?
아침에 창문을 열어 두었다. 비 냄새가 방 안으로 천천히 흘러 들어왔다. 여름보다 더 많이, 더 오래 내리는 비. 달력은 분명히 가을의 끝자락을 가리키고 있는데, 골목은 한철 늦게 찾아온 장마처럼 축축했다.
뉴스에서는 이번 주 강원도에 첫눈 소식이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가능성.” 기상캐스터는 그 단어를 조심스럽게 발음했다. 가능성은 언제나 어쩐지 부드러우면서도 사람을 멀리 데려간다.
전기포트가 물 끓는 소리를 내고, 머그컵은 말없이 김을 올렸다. 창밖의 비가 일정한 박자를 만들었다. 나는 그 박자에 맞춰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려 보았다. 둔탁한 소리가 나왔다. 리듬은 생각보다 쉽게 만들어지고,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커피는 쓰고, 방은 조금 어두웠다.
겨울은 달력의 문턱에서 망설이는 손님 같다. 초인종을 누를지 말지, 현관 앞에서 잠깐 신발끈을 만지작거리는. 강원도 어디쯤에서 눈이 내리면, 그 손님도 마침내 마음을 정하겠지. 하지만 이 도시까지 오는 데에는 몇 번쯤 갈림길이 있다. 바람이 바뀌거나, 구름이 길을 잃거나, 누군가가 문을 잠갔거나.
우산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어제와 같은 습기로 접혀 있었다. 나는 우산을 펴지 않고 그냥 들고 나갔다. 비를 조금 맞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어쩌면 오늘은 몸의 표면을 얇게 적셔 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물기가 남으면 걸음이 천천해진다. 천천히 걷는 동안 마음의 모서리가 둥글어진다.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고, 나 자신도 잠깐은 가벼워진다.

빵집을 지나서 편의점 앞을 지날 때, 고양이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등. 고양이는 나를 한 번 올려다보고, 다시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그 시간은 비와 상관없이 흘렀다. 편의점 문이 열릴 때마다 따뜻한 공기가 바깥으로 밀려나왔다. 안쪽에서 라디오가 작게 흘러나왔다. 오늘의 운세 같은 코너였다. “분실물에 주의하세요.” 아마도 누군가는 우산을 잃어버릴 것이다. 누군가는 겨울의 첫 장면을 놓칠 것이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 차이는 크면서도 작다.
강원도에 눈이 내리면, 기차역 전광판에는 작은 눈송이 그림이 붙는다. 나는 그 도시로 가는 표를 검색했다. 좌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모든 표에는 한 자리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동시에 이미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화면을 닫았다. 화면을 닫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하지만 닫힌 화면의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이 떠올랐다. 조금 낯설었다.
집으로 돌아와 젖은 우산을 말려 두었다. 라디오 대신 오래된 플레이어에 판을 올렸다. 바늘이 표면을 긁으며 소리를 냈다. 첫 음이 나올 때까지 짧은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은 비와 닮았다. 음악이 시작되면, 방의 어둠도 조금 튀어나와 자리잡는다. 나는 소파에 앉아, 강원도의 산자락을 상상했다. 첫눈이 내릴 때의 공기. 소리 없는 환호. 그리고 누군가의 어깨 위에 얹히는 가벼운 하얀 것. 그런 것들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그러나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은 것처럼.
문득 냉장고 문을 열었다. 속에 불이 켜졌다. 희고 차가운 빛. 그 빛은 눈의 성질과 비슷했다. 먹을 것을 고르다가 그냥 물 한 잔만 꺼냈다. 문을 닫고 나면, 빛은 금세 사라진다. 사라지지만, 아까 그 빛의 온도는 입 안에 남는다. 물은 아무 맛도 없는데, 종종 어떤 계절의 맛이 난다. 오늘은 겨울의 가장자리 맛이 났다.
밤이 깊어질수록 비는 더 가늘어졌다. 빗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귀에는 작은 잔향이 남았다. 누군가 내게 물을지도 모른다. 겨울은 언제 올까.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미 조금 왔고, 아직 오지 않았다고. 첫눈은 강원도에서 시작될지 모르지만, 이 방의 구석에도, 냉장고 불빛에도, 젖은 우산에도, 이미 얇게 깔려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단한 게 아니다. 너무 서두르지 않고, 오늘의 비를 끝까지 듣는 것. 그리고 내일 아침, 커튼을 열 때 손끝이 잠깐 떨리도록, 창문 앞에 조용히 서 있는 것. 겨울은 그런 순간을 좋아한다고, 나는 믿는다.